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맘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좋은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 이근화 시인 (0) | 2009.02.13 |
---|---|
눈보라 - 황지우 시인 (0) | 2008.12.29 |
혼자가는 먼 집 - 허수경 시인 (0) | 2008.07.15 |
첫 - 김혜순 시인 (시집 '당신의 첫') (0) | 2008.07.15 |
호박 외 4편 - 김용락 시인 (0) | 2008.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