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가 있었네
강연호
그대 데불고 간 세월의 강물 따라
나 흘러가지 못했네
어쩌면 그리움 어쩌면 외로움 같은 것들이
사실은 견딜 만한 거 아니냐며 뒷덜미 잡아채는
붉은 신호등에 걸려 멈춘 그 때부터
건널목 이쪽에서 신호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서슬 시퍼런 강물 출렁일수록
얼마나 많은 슬픔이 나를 에워싸는지
나 일찍이 철없어 헤아리지 못햇네
그대 이미 물결에 떠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만나 나누었던 사랑이나 눈물
혹은 희미한 추억의 힘만으로도
능히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객기 부렸네
어차피 한 번은 다쳐야 할 상처라며
그대 데불고 간 세월의 강물
말라붙도록 움키고 또 움키었지만
언젠가는 나도 흘러가야 할 물결이라며
그동안 밥 잘 먹고 건강하려 애썼지만
아직도 나를 멈춰 세운 붉은 신호등 바뀌지 않고
건널목 이쪽에서 나 마냥 기다렸네
기다리다 늙어버렸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 세상을 구경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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