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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따라 나선 사람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9. 26. 00:56

 

장마를 꿈꾸며

 

 



황명강  

 

 



열이틀 째 비가 내렸다

저마다의 길이 해갈로 꿈틀거리는 동안

빗줄기의 이빨은 단단하고 뾰족해져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취재수첩을

뒤적이며 카메라 렌즈를 닦으며 태연한 척 난

장마가 그친 뒤의 스케줄을 챙겼다

무릎 적시며 심장까지 차오른 그도

홀연히 지워질 것이라 믿으며


꿈이 밤마다 덜컹거렸다 끈적끈적한 빗줄기,

물어뜯고 싶은 비의 살점은 평온한 식탁을 적시고

꿈이길 바라는 내 꿈까지 침몰시켰다

칸나와 지렁이와 악어가죽 핸드백 그리고 바슐라르,

기쁘게 훔쳤던 마음들이 채찍처럼 날아왔으나

아프진 않았다 빗속이었으므로

빗물의 뜨거운 혀에 감전되는 중이었으므로


오란비 가루비 달구비 여우비, 창밖엔

그해 여름 배반했던 모든 그리움이

나뭇잎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내일도

누구에겐가 비 내리고 장마가 시작되겠지만

그에게 파헤쳐진 검은 심장처럼

장마 지나간 뒤의 웅덩이는 그들만의 문제일 뿐,


(김달진문학제 낭송시, 10월 4일,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