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 모음

모슬포에서 - 김영남 시인

선덕여왕연구자 황명강 2008. 2. 29. 11:22
 

 

모슬포에서

 

 

김영남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모-스-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모슬포 풍경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겠네.

사랑의 끝이란 아득한 낭떠러지를 가져오고

저렇게 숭숭 뚫린 구멍이 가슴에 생긴다는 걸

여기 방목하는 조랑말처럼 고개 끄덕이며 살겠네.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창 밖의 비바람과 함께할 사람 없어

더욱 서글퍼지는 이 모슬포의 작은 찻집, '경(景)에서.

 

 

 

'좋은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 - 김수영 시인  (0) 2008.03.05
해 - 박두진 시인  (0) 2008.03.05
여승 - 백석 시인  (0) 2008.02.29
아주 넓은 등이 있어 - 이병률시인  (0) 2008.02.18
최동호 시인 / 풍경이 하늘을 끌어안다  (0) 2008.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