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 / 경주의 문화·관광 그 빛과 그림자 1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남산지구’
남산 불곡 석불좌상,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을 가다.
<경주 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 198호)>
남산 동쪽 기슭에 가면 감실부처(할매부처)가 있다. 공식 명칭은 남산 불곡 석불좌상이다. 어느 시인은 저리도 다정한 표정이라면 밤새워 어루만지고 싶다고도 했고, 일본에서 온 관광객 몇은 감실부처를 만난 감동에 텐트를 치고 밤을 고스란히 밝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에 조성된 불상으로 단정하게 앉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응시하다 보면 세상사 모든 사념들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어머니 같고 연인 같고 누이 같은 저 모습을 세상 밖으로 펼쳐 낸 이는 누구였을까. 감실부처의 모델이었을 어느 고결한 신라 여인을 상상해보는 일은 참으로 고즈넉한 시간여행이다.
시내에서 불국사 방면으로 달리다 통일전 쪽으로 접어든다. 화랑교를 건너 우측 옥룡암 방향 하천을 따라가다 보면 ‘남산불곡석불좌상’ 이정표가 있다. 경사가 제법 있는 산길로 접어들면 이미 길 저 아래에서의 일은 서서히 잊혀간다. 길의 힘줄처럼 불끈불끈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을 딛고 오르다보면 이곳저곳에 토기와 기와의 잔해들이 천년을 넘어 널브러져 있다. 보통걸음으로 10분쯤 오르면 시누대의 서걱거림이 길손을 맞는다. 가파르게 올라온 발걸음에 보상이라도 하듯 마중하는 시누대 터널을 통과하면 보물 제 198호 남산불곡석불좌상이 있다.
남산불곡석불좌상의 어깨로부터 흘러내리는 법의는 금오봉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흩날릴 것만 같다. 바위에 깊이 0.9m의 석굴을 파고 만든 감실에 모셔진 여래좌상이라서 감실부처로 불리어지는데,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썼으며 두건이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둥그런 얼굴에 고개는 약간 숙여져 있고 눈, 코, 입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평범하면서 평온하여 매우 친밀한 느낌,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의 석불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 불상으로 인해 계곡 이름을 부처골이라고 부르며 시누대숲으로 둘러싸인 감실부처 위편으로는 이곳에서 4070m나 남아있는 금오봉이 내려다보고 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 201호)>
경주시 배반동 산 69번지. 동남산 기슭의 옥룡암 위편에 가면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을 만난다. 커다란 바위 4면에 부처와 탑, 비천상, 보살, 승려 등이 조각돼 있어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입구 안내판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3층 석탑이 있어 탑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애조상군이라는 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 면에 여러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 면에 마주 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동쪽 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 주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인왕상, 보살상, 나무 등이 새겨져 있다. 남쪽 면은 삼존불이 정답게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여래상과 승려상이 새겨져 있다. 서쪽 면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에 여래조상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이 한자리에 여러 상이 새겨진 예는 보기 드문 일이며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고 있다.“
그뿐인가. 북쪽면 뒤에는 신라시대 후기의 석탑이 있고 주변의 바위마다 상이 새겨져 있어 이곳에서는 하루를 보낸다 해도 지루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여럿 있다. 9층 목탑과 7층 목탑을 마음의 발로 오르내리다가 비천상 아래 앉아 아름다운 천상의 음률의 들어보아도 좋으리라. 신라의 장인은 먼먼 훗날 우리의 발걸음을 감지하고 있었을까. 조각된 보리수나무와 목탑 너머로 그때의 바람한줄기가 시원스레 불어오는 듯하다.
<빛과 그림자>
남산불곡석불좌상을 찾아가는 길은 매우 환상적이다. 특히 나무뿌리 꿈틀거리는 산길과 현장에 닿기 직전의 시누대 터널은 그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가뭄 탓인지 시누대가 많이 말라서 안타까웠다.
이곳은 공식 명칭이 ‘남산불곡석불좌상’이나 ‘감실부처’ 또는 ‘할매부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진입로 길에 세워진 이정표 ‘남산불곡석불좌상’ 만으로는 좀 미비하다. 물론 공식 명칭을 써야 함은 마땅하나 덧붙여 ‘감실부처’라는 표기를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간이화장실인데, 매우 필요한 시설물이며 적절한 위치에 있다. 다만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노출상태이므로 앞쪽에 나무를 심어서 가려주었으면 한다.
탑곡마애조상군을 찾으면서 남산전체가 보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옥룡암 경내를 거치지 않고 현장으로 진입하는 멋스러운 길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다녀갔다거나 신라문화를 접했다고 말할 수 없음을 또 한 번 강조해 본다. 나아가 이곳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큰 숙제가 우리 경주인에게 있음도 명심해야 할 듯하다.